조선의 청에 대한 패배 원인 - 살수와 창병의 부재 역사

조선이 청에게 완패를 당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임진왜란과 달리 조선군은 단기간에 전투를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싸워야 했고 더군다나 편제만 바뀌었을뿐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왜군에게 밀렸던 가장 큰 이유는 전시의 주요 투사 무기가 활에서 총으로 급속히 바뀌었고 아시겠지만 총이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검을 이용한 근접전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와 상대적으로 야전에서는 총병이 싸울만한 거리를 만들어줄 창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대부분의 싸움은 공성전이었고 야전의 경험이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야전의 경우 평지에서 기동전을 벌여서 한 번도 이겨본적은 없고 주로 야습이나 기습 또는 지리를 이용한 난전으로 왜군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왜군과 대군으로 교전해서 이긴 경우는 드물며 이때에도 대부분 산성이나 산등성이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기반으로 이겼지 백병전까지 해서 기동전으로 이긴적은 없습니다. 조선군이 이겼던 대표적인 전투인 행주대접, 진주대첩의 경우 화포와 비차, 비격진천뢰와 같은 무기와 더불어서 궁시로 이긴 전투이지 실제 단병 접전으로 싸워서 이긴 적은 많지 않습니다.

소규모 영주들이 모여서 전투를 진행하는 왜군과 작은 족장들을 모아서 8기를 만들고 이를 지휘하는 청군의 경우 실제 전투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실력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많고 군의 뼈대를 이루는 하급 부사관들과 지휘관들이 풍부했죠. 물론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병사 출신에서 올라간 영주들도 꽤 있어서 이들의 전투 경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대들을 해서 제대로된 훈련도 받지 못했고 더군다나 이런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야전에서 보병+기병 운용하는 적들과 싸우는 것은 미친짓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나름 정예병력이라고 생각했던 신립의 병력들도 녹아내렸고 북방에서 야인들과 싸우면서 조선의 정예라고 생각했던 북진 병력들도 가토 기요마사에게 밀려서 깨졌습니다. 북방에서 비정규전에 익숙해져 있던 병력들에게 잘훈련된 정규군과 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좀 다른데로 빠졌는데, 오늘 이야기는 제대로 된 편제 이야기입니다. 아시겠지만 조선 지휘부는 조총과 왜검이 왜군의 장기라고 생각해서 이 두가지를 받아 들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조총의 경우 복제품도 열심히 만들고 항왜들로 편성된 전문 총포대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나름 정예화 했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러한 조총 위주의 보병 편제로 만들고 나서 기동 훈련을 야지에서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난으로 집권한 인조는 뒤이은 이괄의 난으로 인해서 주요 지휘관들의 훈련을 금지했고 마찬가지로 이를 어기는 것은 반란으로 치부했습니다. 물론 대후금 정예병력으로 양성한 이괄의 정예병력들이 반란에서 날아간 상황도 있었지만 후속 병력들은 총포 훈련을 할 수 없었습니다. 총을 잘쏘고 못쏘고는 주둔지에서 훈련양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데, 야지에서 대규모 기동을 하면서 다른 살수 및 사수들과 손발을 맞춰보지 못한 것은 문제입니다.

둘째는 이러한 대규모 포수의 경우 백병전에서는 쓸데가 없으므로 근접접을 위한 별도의 무장과 더불어 전문적인 살수, 사수가 보조를 해줘야 합니다. 조선군이 왜군에게 밀린 이유가 왜군이 궁시 사거리 이내로 바싹 붙어서 일제 사격후 진격했을때 백병전을 해줄만한 인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조선군이 왜군의 편제를 베껴서 포수를 늘릴 것은 좋은데 다음으로 상대한 후금군은 기병이어서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쌍령 전투와 같이 제대로 된 지휘관 없이 마구 총을 쏘고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태에서 적기병이 쇄도하면 보병들은 갈려나간다는 것이죠. 그러한 기병들을 막아줄 화포도 없고 성채도 없는 상황이면 단병접전 훈련받지 않은 병력들은 도망가거나 쓸려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이죠. 임진왜란 때에는 도망가고 병자호란에서는 쓸려 나갔죠.

근왕을 위해서 달려간 조선의 속오군 지휘관들은 임진왜란과는 달리 산성이나 성에서 농성할만한 여유가 없었고 주로 야전에서 싸우다가 졌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는 한데 조선군이 이겼다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비긴 상황이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수원 인근에서 벌어진 광교산 전투인데, 여기서는 그나마 제대로 전열을 가다듬고 산등성이를 등에 지고 목책도 올리고 제대로 된 교차 사격으로 인해서 청군을 몇 번이나 물리칩니다. 물론 화포가 없어서 임진왜란과는 양상이 달랐지만 목책을 기반으로 해서 교차 사격을 하고 백병전도 준비해서 적 지휘관도 사살하는 등 일방적으로 밀렸던 다른 전투와는 다릅니다. 물론 여기서도 단병 접전에는 밀렸지만 그래도 잘 지휘된 조총 일제사격으로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아무리 뛰어나도 포수가 사격하고 재장전 하는 동안 싸워줄 사수와 살수가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싸위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기병으로 편성된다면 야전에서 화포의 지원도 없이 싸우는 것은 힘들겠죠. 조선군이 후금군과 싸우다가 도륙된 대부분의 전투는 야지에서 제대로된 대기병 대책 없이 싸우다가 총알 떨어지고 나서 일방적으로 기병 돌입에 따른 각개격파였거든요. 임진왜란처럼 정규전으로 대규모 병력이 천천히 싸우면 몰라도 기동전 준비도 연습도 안된 상태에서 야전에서 싸운다는 생각 자체가 미친짓이었죠. 사르후 전투에대한 책은 책중일록을 보면 조선군의 궤멸되는 모습에 대한 묘사도 나옵니다. 그나마 중군은 야산에 있어서 궤멸되지 않았지 다른 군들은 말 그대로 썰려 나갔거든요.

다른 글은 다음에 올려 볼까 합니다. 최근에 읽어본 책 가운데 조선 지휘부의 대후금 전투를 보고 정리했습니다. 다음에 여유가 되면 왜 조선은 그렇게 단병접전에 유난히 약했는지 찾아서 정리했으면 합니다.




덧글

  • 존다리안 2018/07/10 00:36 #

    결함도 있긴 했지만 테르시오 같은 것도 필요했겠군요. 하긴 척계광의 원앙진이 왜란 후에 조선에
    도 도입되기는 했던 것 같고....
  • 해색주 2018/07/10 20:35 #

    네, 테르시오가 좀 둔하기는 해도 저런 것을 고민해서 만든거죠.

    척계광의 원앙진의 경우 대보병 전력으로 왜도로 무장하고 단병접전에 능한 왜구를 상대하기 위한 전법이죠. 그나마 농민들을 징집해서 숫적우위로 누르기 위해서 만든게 원앙진이라고 합니다.

    일단 당시 조총이 연기가 무지하게 났고 명중률이 낮았습니다. 서양의 경우 최대한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후에 일제 사격고, 창병이 적보병/기병을 막는 동안 재장전하고 안되면 칼 빼들어서 백병전 합니다. 일단 창병들의 밀집 대형으로 적의 진입을 막아줘야 다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후에 조선중앙군인 훈련도감의 경우 포수, 살수, 사수를 나눠서 양성합니다.

  • 무명병사 2018/07/10 06:05 #

    이야 인조... 인조... 인...(%#$^$%&^$%&^)
  • 해색주 2018/07/10 20:37 #

    조선의 임금중 단연코 쓰레기이죠. 선조야 능력도 있고 대국을 보는 안목이라도 있지 인조는 그냥 개쓰레기입니다. 아들 쳐죽이고 며느리 사사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손자, 손녀 다 싹 죽이죠. 그러면 자기는 처첩을 거느리면서 참 추하게도 살아요.
  • 解明 2018/07/10 18:41 #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 해색주 2018/07/10 20:38 #

    많이 모자랍니다. 해명님 글의 반에 반만 되었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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